그는 오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
실수로도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었다.
술을 마실 때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는
휴대폰 전원까지 꺼가며 조심을 했다.
그런 그에게도 고통스러울 정도로
전화를 걸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.
그들이 아지트로 삼았던 그 오랜 주점이
어느 날 갑자기 수입의류 편집매장으로
탈바꿈 한 것을 발견했을 때,
그는 세월의 잔인함으로 가슴이 아팠고,
그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.
하지만 그런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은 그녀 밖에 없었고,
불행히도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는 안 되었다.
그는 그에게 주어진 금기가 너무 무거워 힘겨워했다.
그녀도 그 만큼이나 오래 참았을 것이다.
결국 먼저 전화를 건 것은 그녀였다.
그녀는 조금 어색해했지만,
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건 이유를 밝혔다.
서울의 어느 극장에서
그들이 좋아하는 감독의 특별전이 열린다는 것이었다.
오랜만의 통화에 어색해하던 그는
그 소식에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,
그 소리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 듯
그녀도 수화기 건너편에서 따라웃었다.
"그 소식 듣고 너무 기분이 좋었는데,
다른 사람은 말해도 모르고... 넌 좋아할 것 같더라구"
그녀의 말에 그는 자기도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.
그들이 좋아하는 술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하자,
그녀는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탄식을 했다.
"어쩌면 그게 없어질 수가 있니, 정말 허망하다..."
"그러니까. 내가 넌 그 마음 알 줄 알았다"
그들은 이 묘한 공감 속에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.
수화기를 들고 있는 이 순간,
그들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구지만,
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다시 남남으로 돌아갈 것이다.
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
사라져간 술집을 애도한다는 핑계로
오래도록 말없이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.
좋은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사람
슬픈 일이 있을 때 그게 왜 슬픈지 이해해주는 사람
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했던 그 사람은
사랑이 끝나는 순간 당신의 곁을 떠난다.
사랑을 잃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당신에게서
가장 좋은 친구까지 데려가 버리는 것이다.
안현민, 사랑에 관한 1000자 고백 中 - 클리앙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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